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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사람 사는 공간으로 돌려줍시다

이광만 한국건축가협회 회장

‘人間時間空間(인간시간공간)’. 서울 신당동 간삼건축빌딩 7층 이광만 대표(60) 사무실에 걸려 있는 문구다. ‘인
간과 시간으로 공간을 채우라’는 의미로 간삼건축의 간삼도 이런 뜻이다. 간삼건축은 영국 건축 전문지인 빌딩
디자인(Building Design)이 발표한 ‘2011 World Architecture Top 100’에서 당당히 40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세계적인 건축설계업체다. 직원이 550명, 건축사만 100명에 달한다. 이광만 간삼건축 대표는 그동안 한국은행
본점, 대치동 포스코센터 등 랜드마크 건물을 건축해왔다. 올 2월 한국건축가협회장까지 맡아 건축설계업체 가
교 역할에 나섰다. 이 회장을 만나 진정한 주거공간 의미를 되짚어봤다.


Q 한국건축가협회장을 맡으셨는데요. 건축사 입장에서 이상적인 주거공간 의미부터 짚어주시죠.

A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동산을 지위나 경제력을 표출하는 대상으로 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삶의
기본이면서 나를 표현하고 삶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면 됩니다. 20평 안 되는 소박한 공간도 얼마든지 가치가 있
다는 얘기지요. 자연을 즐기면서 모든 생활을 바깥에서 하고 내부공간은 잠잘 때만 활용하면 됩니다. 더 이상
큰 집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죠. 집도 다운사이징이 대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소형 세컨드하우스 수
요가 늘어날 겁니다.

Q 세컨드하우스를 지으려면 땅값, 건축비 등 각종 비용이 들 텐데요. 베이비붐세대 평균 자산이 5억원도 안 되
는데 세컨드하우스를 지을 수 있나요.

A 땅값만 제외하면 1억원짜리 집도 얼마든지 지을 수 있다고 봅니다. 건축비용이 많이 낮아졌거든요. 비용보다
얼마나 친환경적인 집이냐가 중요합니다. 요즘 주말에 산에 가보면 등산인구가 꽤 많은데요. 그만큼 기존 주거
지가 친환경적이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친환경적인 집이라면 가격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가치를 발할 수 있어
요. 건축비용은 1억~2억원이면 되지만 수도, 전기, 보안 등을 고려할 때 단일가구보다는 마을 형태의 단지가 필
요합니다.

Q 유럽에 가면 오래된 건물이 잘 보존돼 있는데요. 우리나라에는 덕수궁, 종각 주변에 고층빌딩이 들어서서 경
관을 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을 어떤 도시로 꾸며야 할까요.

A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고밀도 아파트보다 저밀도 주택 비중이 높습니다. 아파트 비중은 20~30% 정도에 불과
하고 대부분 지방 도시들은 단독주택 위주예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 소도시에도 아파트가
대거 들어서 있어 안타깝습니다. 인구가 서울로 집중될수록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많은 도시 인프라가
필요한 데다 부동산 임대료 같은 각종 물가가 치솟을 수밖에 없어요. 비록 서울 땅이 부족하지만 외곽지역 땅을
찾아 4~5층짜리 직주근접 형태의 도시형 주택을 계속 지어야 합니다. 1층에는 가게를 두고 2층은 사무실, 나머
지 층은 주거공간을 넣으면 됩니다. 한 예로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이 좋은 모델입니다.
프랑스 파리를 보면 고층건물이 많지 않고 8층 내외 건물이 도시와 조화를 이루며 예쁘게 들어서 있어 환경친화
적입니다.

Q 아파트 위주의 주거문화를 개선할 방법은 없나요.

A 도시농부를 보다 활성화해야 합니다. 서울 외곽에 저렴한 땅이 필요한데 땅값이 비싼 수도권 남부 대신 북부
지역에 도로만 잘 뚫어 놓으면 전원생활을 누리기 좋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세종시에도 아파트 대신 단독주택
을 많이 건설해야 한다고 봅니다. 건축비를 아끼려면 건축자재를 규격화하는 것도 필요한데요. 미국 카탈로그하
우스처럼 규격에 맞춰서 적은 돈으로 창호나 각종 건축자재를 통일해 산업화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아파트만
규격화해왔지만 교외 단독주택도 산업화해 저렴한 주택을 많이 공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마을단지화 개념
이 필요하겠죠.

Q 취임 일성으로 민간 건축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인가요.

A 지금까지는 건축 개념을 부동산과 동일시해왔습니다. 주거상품을 모두 부동산 가치로 평가해왔죠. 저희는 지
난해부터 ‘나에게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건축문화운동을 해왔습니다. 반응이 아주 좋아요. 전국에 세컨드하우
스 개념의 단독주택 200호도 착공했고요. 집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닌 예술을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좋
은 집, 좋은 건축물은 하나의 문화이고 그 존재가치를 중요시해 후손에 대물림해야 하는 거죠.

아파트는 재개발되면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문화 흔적이 송두리째 날아가버리는 거죠. 결국 나에게 집이란 무엇
인지를 생각해보면 대규모 아파트가 아닌 삶 응어리가 녹아 있는 초가삼간이 더욱 가치가 있어요. 앞으로 교외
세컨드하우스에서 주말을 즐기는 인구가 급증할 겁니다. 결국 정부가 주도해 대규모 택지개발을 하지 말고 민간
이 기본으로 돌아가는 건축시장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동안 건설사들이 일률적인 형태의 주거상품 건설에 치
중하면서 건축설계시장이 위축됐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건축설계사 일자리도 만들고 주거문화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민간 건축 활성화에 나설 계획입니다.

Q 광화문광장을 최악의 건축물로 꼽는 건축인들이 많은데요. 가장 멋진 건축물을 꼽아주신다면.

A 광화문광장 공간 자체는 랜드마크로서는 괜찮습니다. 계획 단계에서 좀 더 고민하고 접근했어야 하는데 정치
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나 싶어요. 인간을 배려하는 공간 의미가 부족합니다.

광화문광장을 만들 때 크게 2가지 안이 있었는데요. 첫째는 가운데 차도를 뚫고 양옆 공간은 인도로 만들어 세
종문화회관과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둘째는 지금처럼 가운데 광장 공간을 두고 양옆에 차도를 뚫는 방식인데
요. 건축가들은 대부분 둘째 안에 반대했지만 결국 이 안으로 지어졌어요. 광화문광장이 서울의 미적인 부분을
훼손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건축물은 북촌한옥마을입니다. 전 세계인들이 찾아와 즐길 정도로 관광상품으로서 가
치가 높아요. 한옥뿐 아니라 거리마다 펼쳐진 조그마한 가게들과 예쁜 간판, 맛집들이 골고루 들어서 있어 한국
인 삶이 잘 녹아든 공간이 됐어요.

Q 해외에서 우리 건축물이 인기라면서요.

A 한국형 신도시가 외국에서 인기입니다. 우리나라 신도시는 보통 4~5년의 짧은 기간에 완성됩니다. 도로 같은
인프라 기반시설을 만들고 아파트 입주까지 필요한 시간이죠. 하지만 외국에서는 이렇게 빨리 짓지 못합니다.
때문에 외국 대통령들이 임기 내 성과를 거두기 위해 한국식 건축을 필요로 합니다. 저희는 도시 설계부터 건설
까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모든 과정을 패키지로 수출하면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습니다. 한 예로 몽골에
서는 질병관리본부를 지을 때 단순한 건축물만 짓는 게 아니라 내부에 들어가는 장비와 운영방식, 인력까지 맞
춤형 건축을 요구합니다. 중국 선양에서는 한국형 온돌식 아파트가 대세로 자리 잡았고요. 건축도 다른 산업 못
지않게 수출산업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얘기입니다. 앞으로도 건축설계부터 건설, 운영까지 융합된
과정을 산업화해 수출하면 건축업이 수출 효자종목이 될 것으로 자신합니다.

이 회장이 이끄는 간삼건축도 해외 시장에 진출했다. 베트남 호찌민, 카자흐스탄 알마티, 두바이, 쿠웨이트에 사
업장을 갖고 있다. 이 회장은 “베트남 사업이 가장 활발한데 주상복합단지 같은 한국형 건축물 수출에 앞장서고
있다”며 “K팝처럼 우리나라 건축도 세계 시장에서 인기를 끌 수 있다”고 강조한다.


1952년생/ 홍익대 건축학과/ 홍익대 환경대학원 석사/ (주)간삼 대표/ 2012년 2월 한국건축가협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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