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권역
명동성당 종합계획 [1단계] 건축가 진교남
기억
서울에서 오랜 생활을 한 사람들에게 명동이라는 이름과 장소는 한국 근대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생각 은 당연할 것이고 아마도 종로, 광화문과 더불어 개인의 추억과 역사의 무대가 되는 일도 다반사일 것이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유년시절 대부분을 종로와 광화문, 명동 일대에서 지냈으니 명동은 나의 유년기에 있어 일상 의 무대이자 수많은 기억 속의 배경이다. 다른 말로 내 유년기의 정체성은 명동이라는 장소적 정체성에서 분리 해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 기억 속 대부분의 사건들, 순간적인 이미지, 상황, 느낌, 인물, 그 외 모든 감 각적 기억들은 특정 공간이나 시간적 배경과 연계되어 생각나는 이야기들이다. 이 점에서 도시 속의 어떤 특정 한 장소에서 건축물과 공간이란 구체적인 물질적 형상과 시간의 흔적이 없다면 우리는 정체성을 존속하기 어렵 고 결국 사회라는 공동체의 소속감을 잃어가는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
장소
1970년대까지의 명동은 서울의 중심지이면서도 도시의 형상이 획일화된 지금과 달리 각 구역마다 독특한 스케 일과 분위기로 그 경관의 차별을 주었고, 소위 이정표 같은 건물들이 주변의 일반 건물들 사이에서 일종의 구심 점 같은 장소를 형성하며 그 구역의 대표적 장소로 식별되었다. 한국 최초의 가톨릭 본당인 명동성당도 1900년 대 초반에 뾰족집이라 불리며 처음 세상에 나와 명동의 한자리를 지금까지 차지하고 있으며 시대적인 격변을 거 치면서 명동을 대표하는 장소로 단순한 건축물이나 공간을 넘어선 기억과 시간의 축적된 총체로서 많은 사람들 에게 각인되어있다. 지난 4년(2011~2014년)동안의 공사를 마친 교구청 신관과 명동성당 권역의 모습에 대한 많 은 사람들의 의견은 새로운 환경이 그 이전의 모습과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4년이라는 공 기, 9,900평이라는대상 면적, 그리고 수년의 설계와 십 년 이상의 계획을 무상하게 만들 정도의 의견이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그들과 내가 공유하는 명동성당에 대한 집단적인 기억과 의식의 관계가 연속성을 이루고 있다 는 뜻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견해가 소수의, 그리고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 설계팀과 나에게는 위 에 언급한 장소와 시간에 대한 그간의 고민이 사려있는 작업이었다는 희망적 안도임이 분명하다.
스케일
명동성당은 고딕 스타일의 건물이고 조금 더 해석하자면 서양에서 발달한 프랑스식 고딕스타일이 1898년 프랑 스 코스트 신부님에 의해 당시 조선의 실정에 맞는 조적조의 실험과 고딕 스케일의 조절을 통해 완성된 Franco- 조선식 축조물이다. 코스트 신부님의 실험과 조절의 노력에는 분명 당시 조선사회에 전하고 싶었던 고딕성당이 라는 종교적 고층 건물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시대적 배경과 문화 및 지역의 차이점에서 최상의 적합함을 찾 는 것이었을 거라 짐작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명동성당의 건축적 스케일에 깊은 인상과 공감을 느낀다. 명동성당이 유럽의 고딕성당들과 비교할 때 건축물의 여러 전형적 요소들과 공간의 크기가 편안하고 아늑함이 느끼는 정도까지 아주 적정하고 아기자기하게 축소되고 정제화 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바로 휴먼 스케일이라는 점이다. 명동성당권역 내에서 이러한 공간감이 느껴지는 특별한 장소가 보이기도 하는데, 교구청 신관과 문화홀이 모이는 작은 마당 그리고 연결되는 교구청 신관의 회랑과 사도회관, 교구청신관 진입홀 사이의 중정이 그곳이다. 웅장하고 섬세하지만 약간은 권위적인 고딕의 전형이 새로운 환경에서 조금 더 친근한 공간으로 변화되어 종교적 상징성을 교감할 수 있게 된 것은 이질적이고 약간은 경계의 대상이었던 새로운 종교가 휴먼스 케일이라는 감성적 현상을 통해 집단적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었으리라.
길
여러 건물들의 출입 레벨과 입면들, 크고 작은 열린 공간과 건축적 요소들이 어우러져 있는 교구청 신관 광장은 어떤 특정한 비례법칙이나 수학적 배수로 이루어진 계획이라기 보다는 앞서 언급된 건축적 공간과 요소들의 연속성있는 연계, 그리고 그에 부합하는 공간적 ‘강약’이 일종의 감성적이고 서술적인 입체적 길을 형성하고 있는 현상적인 공간이다. 명동길에서 명동성당 광장까지 도착할 수 있는 길과 동선의 방법은 정말로 다양하다. 그 사 이에는 광장, 성모동굴, 중정 등 6개의 다른 레벨에 위치한 옥외공간이 있으며, 그 옥외공간들은 4개의 옥외계단 과 경사 램프 그리고 두 곳의 옥외연결 엘리베이터로 마치 소형화된 도시계획과 도시의 혈관인 길의 네트워크 와 유사하다. 이 길들 중에서도 성당 종탑과 축을 일치한 성당 설계 당시부터 계획되었던 중앙계단과 반달 모양 의 경사로는 그 상징적 의미가 특별하다. 중앙계단에서 볼 수 있는 방향의 설정과 축의 구축은 인간이 거주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상징적인 행위이다. 그것을 중심으로 하는 명동성당 권역의 계획은 축의 형태와 지형 의 자연적 조건에 따라 축조물들의 배치와 형태, 그리고 밀도가 형성되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이‘구원 의 계단’은 기독교적 사상이 실질적 축조물에 구현될 수 있는 상징이다. 그리고 반달 모양의 오솔길 또한 거주지 의 형성이 자연환경 그리고 지형과 타협하여 시간의 흐름 속에
서 구체적으로 구현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성
건축에서 벽돌이라는 재료는 아마 가장 근원적이며 개념적으로도 가장 완벽한 축조적 기본 재료임이 분명하다. 그 물성은 나무, 돌과 함께 우리 문명사 전반에 걸쳐 각 지역과 문화의 특성 내에서 독립적으로 발전하였으나 공 통적으로 우리들에게 가장 친근하며 온화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물성적 기운을 가지고 있다. 어떠한 공간 이 ‘거주지’와 같은 삶과 대지가 엮인 장소성으로 존재 가능한 조건 중에는 그 장소를 구체적으로 구성하는 건축 물들의 형태와 그것을 이루는 물성이 직접적이고 실체적인 역할을 한다. 명동길에서 바라보는 명동성당 진입부 인 계단 끝자락에서 가장 먼저 시각적으로 느끼는 것은 벽돌이다. 계단의 참이나 창 그리고 벽돌벽이 끝나는 마 무리 부분, 즉 두겁석 같은 요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벽돌이다. 붉은 벽돌과 전벽돌, 전벽돌과 유사한 진한 회색 벽돌, 100년이 넘게 존속해 온 거친 벽돌, 최근에 쌓은 고운 표면의 벽돌 등 온갖 종류의 벽돌들이 교구청 신관 과 명동성당 권역의 언덕 전체를 뒤덮고 있다. 가히 모든 사방이 벽돌 천지이고 압도적으로 많은 단일 재료의 물 성은 성당권역의 다채롭고 독특한 구조물들이 언덕이라는 지형 및 그 사이 공간과 연계되어 수평과 수직적 연속 성이 읽혀지는 하나의 공동체적 ‘거주지’로 형상화되게 만들고 있다. †
진 교 남
현재 디자인2부문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미국, 스위스, 일본의 해외활동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건축 특 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건축 디자인을 추구하는 건축가이다. 연구소, 연수원, 교육시설 및 문화시설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LG 사이언스파크, 수원 교구청 사회복음화센터, 수원 신 풍지구 미술관을 진행 중이며,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명동성당 종합계획 1단계, Aloft Seoul Gangnam Hotel, 광주과학기술원 2단계 및 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병원 메디컬HRD센터, 조선일보 Newseum, 동두천경찰서 등 을 설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