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_ 건축가 이정승
미술관, 시민의 공간으로 열리다
제 13회 Gansam Design Award 대상 수상
퐁피두센터와 같은 뮤지엄들은 세계적인 컬렉션을 앞세워 도시와 국가의 한계를 뛰어넘는 예술적 대중성을 확보하였다. 또한 세계적 미술관으로서의 명성 이전에 한 도시의 일상이 될 수 있음을 건축적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고, 그 가능성은 전세계 미술관들의 주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도시와 광장을 향해 열린 이 유명한 미술관에는 레스토랑, 카페, 뮤지엄 샵, 극장, 교육, 전시시설 등 다양한 도시적 컨텐츠를 갖추고 있어서 과거의 정형화된 미술관의 이미지가 아니다. 건축의 형태는 의미를 최소화한 반면 컨텐츠만이 뮤지엄의 가치를 드러내도록 했다. 전시를 방해하는 모든 배관들은 외부로 노출하였고 어떤 종류의 전시도 가능할 것 같은, 마치 컨벤션센터 같은 Universal Space 1)의 성격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현대 미술의 중심을 뉴욕 맨하탄에서 유럽으로 가져오는 데 일조하였다.
국내의 미술관들도 Museum 건축의 세계적 트렌드에 따라 더 높게 더 크게 짓는 것이 추세다. 퐁피두센터가 보여준 효율성 때문인지 전시를 위한 큰 방이 중심이 된 미술관 평면 계획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퐁피두가 제공하는 강력한 컨텐츠나 차별화된 기획력 없이 공간만을 모방한 결과,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매번 세계적 규모의 기획전을 준비할 수 없는 지역의 미술관에 이러한 평면 구조를 적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고민은 우리 실정에 맞는 미술관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Treasure house . 보존 . 미술관의 원형은 과거 왕족과 귀족들의 보물창고였다. 때문에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미술관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고 평생에 한 번 가보기도 힘든 곳이었다. 지금처럼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예술 작품을 접할 수 없는 시절이었기에 미술관이라는 장소가 갖는 의미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해묵은 보물창고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미술 작품이 갖는 판타지, 혹은 아우라는 현시대에도 유효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예술의 대상을 일상으로 가져오는 혁신을 이루었고, 그 대상은 신에서 인간으로 또 인간에서 사물에까지 이르렀다. 우리의 일상이 예술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일상을 대상으로 한 작품의 가치는 일상적이지 않다. 마치 보물에 비견될 만한 것이다. 따라서 나에게 미술관은 이런 보물들이 보관된 일상적이지 않은 장소의 의미이며, 언제든 자유롭게 들를 수 있는 생활 속 공간이라기보다 방문이 기다려지는 다소 설레고 특별한 장소였으면 했다. 미술관은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만의 아우라가 존재해야 하고 그 속의 보물들을 더 아름답고 소중하게 드러내야 할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는 현실과는 구별되는 독특하고 특별한 세계와 건축적인 분위기를 이 미술관에 담고자 하였다.
수원화성 . 보존과 개방이라는 두 가치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우리의 계획에 있어 개방과 공공성은 도시와 만나는 물리적 구조, 컨텐츠, 서비스에 대한 것이고, 보존은 미술관의 가치와 분위기에 대한 것으로 정의하고자 했다. 이는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우리는 Unesco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수원화성은 과거 적들로부터 행궁을 지키는 견고한 성으로서 Treasure House의 성격과 그 당시 혁신적인 도시 계획에 의한 9개의 크고 작은 문과 길을 통해 주변과 소통하는 상업도시이자 Civic Place적 성격을 모두 담고 있다. 우리의 미술관이 수원화성이 가진 보존과 개방이라는 이상적인 가치를 빼닮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계획의 시작이었다. 성벽을 닮은 매스는 미술 고유의 영역을 견고하게 지키게 하고, 옛 흔적을 따라 흐르는 길은 도시를 향해 적절하게 연결되어 시민들의 공간으로 열려 있도록 했다.
context . 수원화성행궁 . 미술관이 위치한 대지는 수원화성이 지켜야 할 보물인 수원화성행궁과 행궁광장에 인접한 곳이다. 미술관이 자리하기 전 그 땅의 기억을 찾고자 과거의 지적선과 옛길의 흔적을 고려하는 한편 행궁의 주요 구성 요소인 마당과 회랑이라는 공간 개념을 도치시켜 적용함으로써 이 도시에 적합한 스케일과 컨텍스트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즉 마당의 Void적 공간은 견고한 벽으로 둘러싸인 갤러리로, 회랑의 Solid적 공간은 골목길의 형태로 치환되어 미술관이 된 것이다.
분절 . 행궁의 공간이 여러 개의 마당에 의해 분절되었듯 미술관도 4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관람객에게 다양한 도시적 경험을 선사한다. 이러한 분절은 행궁과 행궁광장에서 바라볼 때 미술관의 규모를 작게 인식하게 함으로써 문화재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시립미술관의 특성상 전시와 상관없이 시민에게 개방해야 할 공간을 최대로 확보할 수 있게 해 운영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실제로 골목길과 홀, 그리고 4개 중 2개의 매스는 상시 개방되어 공공시설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1) Universal Space : 다목적이용이 가능한 무한정(無限定)공간으로 미국 건축가 Mies van der Rohe가 제안하였다.
건축가 이정승
現 디자인 2부문 이사. 현상설계 및 마스터플랜 등의 소소한 프로젝트부터 대형 프로젝트들을 두루 경험하면서 외형의 멋에 집착하기보다 건축주의 실질적인 고민에 귀기울이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카운셀러의 역할이 건축가의 올바른 역할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작품으로 명지대학교 창조예술관과 여수엑스포 아쿠아리움, 이천 장애인 종합체육시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