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치유 환경의 개선과 감염 관리의 진화
은평성모병원 건축가 장규희
"병원 감염은 결국 의료의 질 저하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경제적·법적·윤리적·사회적인 문제를 초래한다. 일반인에게 병원 감염은 의료인이나 의료 기관의 과실로 인해 발생되는 것으로 인식돼 빈번한 법적 소송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의학 수준에서도 병원 감염을 100%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30~35%정도 예방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원 감염의 개념
병원 감염이란 단어 그대로 병원에서 획득한 감염, 입원 당시에는 증상이 없고 잠복 상태도 아니었던 감염증이 입원 후에 또는 퇴원 후에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병이 옮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물과 비누로 손을 깨끗이 닦아야 한다.’ 이 지침을 처음 제정하고 시행을 주도한 사람은 근대 간호학의 창시자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이다. 1854년 러시아와 유럽 동맹군 사이에 크림전쟁(1853~1856)이 발발하자 간호 자원봉사대원으로 전쟁에 참가했다. 당시 영국군은 전쟁에서는 불과 5,000여 명이 사망했으나, 병상에서는 1만 5천여 명이 사망했다. 야전병원에서의 전염병 감염이 원인이었다. ‘환자 주변에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있다’는 의혹이 크림전쟁 당시 야전병원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영국 왕립진료소에서 환자의 절반이 패혈증으로 사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셉 리스트(1827~1912)가 석탄산(페놀)을 수술실 주변에 뿌리고 손과 의료 기구를 닦는 데 사용한 것이 1865년. 이때부터 소독(消毒)의 신기원이 열렸다.
B.C. 1600년쯤 이집트 기록에는 48건의 외과 수술 사례가 있는데, 환자의 80~90%가 수술 후 다른 병에 감염돼 사망했다고 한다.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 의해 치명적인 병원 감염이 발생한 역사는 기록만으로도 3,50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20세기 들어서 무균실 개념이 생겼고, 1940년 항생제 ‘스트렙토마이신’의 개발, 60년대 이후 각국의 병원 감염 관리 기준 제정으로 병원에서 병을 얻는 비율이 3~5%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항생제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가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더니 이번에 메르스가 감염 관리 기준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국의 병원에서 확산되었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는 메르스가 병원 감염으로 확산되는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우리의 대형병원 응급실은 전쟁터 야전병원을 방불케 한다. 경제성만 앞세운 병원의 관리 체계는 당연히 개선해야 하지만 문병·간병 문화도 변화가 시급하다. 우리와 다르지 않았던 일본의 문병·간병 문화는 1994년 ‘신(新)간호 체계’가 도입되면서 확 바뀌었다. 일반인은 손을 잘 씻고, 병원은 소독을 잘 하고, 정부는 새로운 간호 체계 도입을 궁리하기 시작해야 한다.
감염 관리의 필요성
현대의 의료 환경은 새로운 항생제 개발, 각종 소독제 사용, 보호장구의 착용이 강화되었음에도 항암요법의 발달, 면역 억제제 사용으로 인한 면역 기능 저하 환자의 증가, 침습적 시술(몸의 절개 등 환자에게 고통이 수반되는 보통의 수술 방법)의 보편화, 항균제 내성 균주의 증가 등의 요인으로 병원 감염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 CDC의 보고에 의하면 병원 관련 감염이 매년 약 1,700만 건 발생하고, 사망자 또한 매년 9만 9,000명에 이르며, 이로 인해 한 해 약 100억 달러의 의료비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병원 감염 발생 비율은 연구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입원 환자의 3.7~15.5%가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원 감염은 결국 의료의 질 저하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경제적·법적·윤리적·사회적인 문제를 초래한다. 일반인에게 병원 감염은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의 과실로 인해 발생되는 것으로 인식돼 빈번한 법적 소송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의학 수준에서도 병원 감염을 100%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30~35%정도 예방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염 관리의 체계
2002년 개정된 의료법에 의하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감염 관리 조직을 구축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병원장이 감염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되고 병원감염 예방에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법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적인 감염 관리 실무를 담당하는 감염 관리실을 둬서 감염 관리상 필요한 조치가 원활히 이뤄지고 모든 감염 관리 프로그램이 적극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감염 관리 사업은 감염대책위원회의 토의와 인준을 거쳐 감염 관리실의 업무를 거쳐 수행하게 되나 병원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결정자로부터 의사, 간호사, 일반직, 환경미화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메르스, 그 후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의료시설은 또 한번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병원의 입원실은 6인실 기준 병상이 대다수여서 다인실 병실 구조로 인해 감염에 취약한 구조였다. 특히 병실에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 상주하는 경우는 감염 위험성이 더욱 우려되었다. 2015년에 발생한 메르스 사태는 국내 병원의 입원실 환경의 취약점이 그대로 노출된 사례다.
의료계에서도 원내 감염의 발생 억제와 예방을 위해 입원 병동의 시설 개선과 간병 문화 개선을 추진하고 있으며, 입원실 환경 개선을 위해 병상 간 이격 거리 확대(1.5m), 입원환자 병동에 자동문(스크린 도어) 설치 등 시설 개선에 투자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의료 기술에 감성을 입혀 치료가 아닌 치유의 개념으로 전환하는 등 병원의 새로운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 은평성모병원이 새로운 트렌트의 ‘기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장 규 희
ARCHITECT
산업시설, 의료시설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작품으로는 The-K 트윈타워, 현대해상 안산사옥, 반얀트리(타워호텔) 리모델링, 나로우주센터, OCI 군산공장, LG화학 폴란드 전지공장, 녹십자 태국공장, 삼화콘덴서 용인공장, 은평성모병원,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BTL)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