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센트로폴리스
건축가 여정우
CA-디자이너가 현장에 채워주는 감성
도시환경정비사업에서 센트로폴리스로 거듭나기
필자가 현장에 CA로 파견된 시점은 골조 공사가 한창이던 동시에 커튼월 및 마감 공사가 시작되었던, 준공을 1년 앞둔 시기였다. 시공사와 발주처가 마감 공정에 이르러 원 설계자의 도움이 실시간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이뤄진 기회였다. CA로서 주로 관여했던 사항은 마감 자재 검토, 설계 변경 시 디자인 의도 및 법규, 심의 사항, 허가 조건에 부합되는지 등에 대한 검토, 준공 인가를 위한 기존의 인허가 조건 최종 수행 여부의 검토였다.
현장의 CA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도면이나 시방서에 기재되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 디자이너의 감성으로 기준을 잡아주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은 복잡한 건물일수록 단순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센트로폴리스는 업무시설, 판매시설, 전시시설이 서로 공용부를 공유하거나 시선을 교환하면서 얽혀 있는 건물이며, 형태적으로도 육중한 매스의 무거움을 덜기 위해 다양한 요소로 매스를 분절시킨 모습이다. 건물의 특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와 같이 형태적으로 복잡하다면 색상을 단순화해 누더기 옷을 걸친 건물이 되지 않도록 단순한 컬러의 팔레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감재 승인의 기준은 이미 현장에서 결정돼 시공되고 있는 자재와 간삼에서 제출했던 추천 자재 샘플 및 자재 보고서를 기반으로 정리한 팔레트였다. 타워의 커튼월 유니트 제작이 끝나고 설치를 시작하던 시점에 CA로 파견되고 보니 실시설계 납품 시의 제안과는 달리 타워의 색상은 분절된 매스가 그레이와 브라운 색상의 조합으로 적용돼 있었다. 현장에서 적용된 커튼월의 그레이와 브라운을 키 Key 색상을 기존에 실시설계 시 납품했던 추천 자재들과 조화시키기 위해 건축물 구석구석의 마감재를 검토하였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던 것은 CA에 대한 발주처의 신뢰였다. 마감재의 결정은 시공사가 자재 승인을 올릴 때 CA의 검토 의견을 첨부해 CM을 거쳐 발주처에서 승인하는 형식이었는데, CA의 승인이 있는 마감재 관련 사항은 발주처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
현장에서의 설계 변경이 기존의 디자인 의도, 건축 심의 내용이나 허가 조건에 부합하는지를 검토하는 것도 CA가 현장에서 채워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다. 설계와 인허가 과정에서 쌓여온 큰 맥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의 히스토리 History를 이어주는 것이 CA라고 생각한다. 센트로폴리스는 역사, 문화적 의미뿐 아니라 도시적으로도 유동 인구의 비율이 높은 대지에 위치해 있다. 사대문 안에서의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서 정비계획 지침상 옛길을 살리도록 의무화돼 있는 대지에 위치했다. 문화재의 출토는 이러한 대지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극대화했다. 설계 단계부터 지상 1층은 옛길, 공개공지, 공공 보행통로를 조화시키면서 보행 환경을 개선하는 동시에 환경영향평가 대상으로서 녹지를 최대한 확보해야 하는 두 가지 숙제를 한꺼번에 풀어야 했다. 이 한 가지 이슈를 위해서도 건축뿐 아니라 토목, 조경, 인테리어, 친환경 설계에까지 협력을 이어가야 했던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의 히스토리를 모르면 어느 한쪽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한쪽을 쉽게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계획설계 단계부터 몇 차례에 걸친 인허가 과정에 참여했던 설계자이자 CA로서, 맥락을 놓친 의사결정이 없도록 프로젝트 히스토리를 시공사 및 감리단과 공유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공종 간 상충을 조율하고 각 행정 부처의 요구 사항을 풀어나가는 과정에 동참할 수 있었다.
미국의 어느 작가주의 스튜디오에서는 설계에 참여했던 디자이너를 프로젝트 현장에 무조건 CA파견을 보낸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설계도서에 미처 표현되지 못한 디자인적 감성을 현장에서 세심하게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계약은 발주처와 이뤄지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 설계자의 의도를 충분히 담아낸 높은 퀄리티의 프로젝트가 완성된다.
센트로폴리스는 시공사와의 CA계약이었음에도 발주처의 서포트와 시공사의 협조로 설계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다. 앞으로도 완성도 높은 프로젝트를 위해 CA는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공사의 필요에 의한 발주가 아니라, 발주처의 완성도에 대한 책임감이 우선되어야 하기에 사회적인 의식의 개선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여정우 건축가
건축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이 많다. 미국과 중국에서 활동한 바 있으며 오피스, 호텔, 복합 용도시설 등의 프로젝트를 주로 수행하였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미국 보스턴 Fan Pier 오피스 및 호텔 개발계획, 인도 방갈로 콘라드 힐튼 호텔/오피스 복합단지, 공평1,2,4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