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자연을 닮은 갤러리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은 미술관 건축이라고 하면 쉽게 연상되는 것처럼 무게감 있는 육중한 조형을 통해 스스로의 건
축적인 위용과 자태를 뽐내기보다 제주자연을 새로이 감상하는 열린 프레임이 되고자 했으며, 그 안에 담길 다
양한 예술작품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기꺼이 배경이 되어 한걸음 물러서 있는 건축물이다. 또한 이 건물은 형
태적으로 완성된 건축물이기 보다는 예술품들과 그것들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주인이 되어서 더욱 정감
있는 이야기들이 생겨나는 종합문화예술공원으로서의 장소성을 만들어 가는 그런 곳이기도 하다.
제주도립미술관은 건축공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입방면체를 기본컨셉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단순하고 리
적이면서 절제된 이 건물의 형태에는 제주의 바람과 빛을 온전히 담아내면서도 그 안에 담길 예술품들이 더욱
빛을 발하게 하고자 하는 건축가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입방면체는 대지와 만나면서 분할되어 유채와
억새, 그리고 물과 분화구를 담아내는 그릇이 되고, 단순함의 미학을 담고 있는 두 개의 미술관 건물은 그 외관
이 면과 프레임으로 분화되어 제주의 하늘과 한라산을 담아내는 거울이 되어주고 있다.
제주도립미술관을 감싸안고 있는 거울연못은 바다를 건너 다다르는 탐라도 정취의 투영이자, 마음을 정갈히하
고 예술작품을 감상하고자 하는 세신(洗身)의 의식이기도 하다. 거울못을 건너 마주하게 되는 미술관 입구의 작
은 마당은 무채색의 제주석과 노출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절제된 형태의 진입마당이다. 이곳은 여느 미술관의 활
기 넘치는 너른 진입마당과 달리 네면이 위요되어 주변의 번잡스러움이 차단된 작은 마당으로서 관람객들에게
제주의 흐드러진 자연을 만끽하며 느슨해진 정서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형형색색의 형태와 색채를 잊고 미술관
에 들어서서 그 안의 예술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게 하고자 하는 건축가의 의지가 담겨있다.
제주도립미술관은 제주의 특별한 자연을 감상하는 열린 갤러리이기도 하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제주의 하늘
빛, 청명한 날이면 제주 어느 곳에서나 그 모습이 바라다 보인다는 한라산, 들판에 흐드러진 유채꽃과 바람결
에 굼실대는 억새의 물결 등 이제껏 보아왔던 제주의 비경이 제주도립미술관의 열린 프레임 너머에선 신선한 감
동을 주는 나만의 특별한 예술작품이 된다. 어느 대가의 예술작품을 이에 비할 수 있을까.
제주도립미술관의 설계를 담당한 간삼건축의 김미정 소장은 ‘이 건물은 자연과의 교감을 강조하고 있는 간삼건
축이 최근 일련의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소통의 공간’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하나의 전형이 되어 줄 것
으로 기대한다.’고 한다. 사람의 삶은 담아내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건축을 바라보았을 때 예술품과 이곳을 방문
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무언가의 배경이 되고자 한걸음 물러설줄 아는 제주도립미술관
의 겸허한 자세야 말로 좋은 건축의 일례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