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 천재 이상, 이상한 이상...
건축무한육면각체 An Magasin de Nouveatutes
이상의 삶은 극적인 영화와 같다. 어린 시절 양자로 입적되어 시작하는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그의 화려한 여
성 편력과 작품 활동을 거쳐 마지막으로 당대 대표적인 문화병인 폐결핵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나 이상
은 이상이다. 그로 인해 이 땅의 시와 소설은 대단한 전진을 하였음에 틀림없다. 오죽하면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
이 최고 권위의 상이 되었을까?
그러나 그는 위대한 시인이자 소설가이기 전에 영원한‘ 건축쟁이’였다. 시인 이상이 경성고등공업학교(현 서울대
학교) 건축과를 수석 졸업한 건축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건축가로서 활동기간이 짧아서
애석하게도 그의 작품은 남아 있는 것이 없지만 그의 건축가적 면모를 볼 수 있는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시
가 있다.
건축무한육면각체 建築無限六面角體 An Magasin de Nouveatutes*
- 이 상 -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 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거세된양말(그여인의이름은워어즈였다).
빈혈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마르세이유의봄을해람한코티의향수의맞이한동양의가을.
쾌청의공중에붕유하는Z백호.회충양약이라고씌어져있다.
옥상정원.원후를흉내내이고있는마드모아젤.
만곡된직선을직선으로질주하는낙체공식.
시계문자반에ⅩⅡ에내리워진일개의침수된황혼.
도어-의내부의도어-의내부의 조롱의내부의카나리아의내부의감살문호의내부의인사.
식당의문깐에방금도달한 자웅과같은붕우가헤어진다.
파랑잉크가엎질러진각설탕이삼륜차에적하(積荷)된다.
명함을짓밟는군용장화.가구를질구하는조화분연.
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가고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간사람은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
한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저여자의하반은저남자의상반에흡사하다(나는애련한후에애련하는나).
사각이난케이스가걷기시작이다(소름이끼치는일이다).
라지에터의근방에서승천하는굳바이.
바깥은우중.발광어류의군집이동.
1932년‘조선과 건축’에 발표한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는 매우 난해해서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나‘ Au
Magasin de Nouveautes’, 즉 현대적 백화점이라는 뜻의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백화점 건물을 보고 느낀
감상을 적은 시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 시는 한 백화점을 둘러보고 그린 풍경화다. 백화점은 현대적인 소비
문화를 상징하는 곳으로 모든 산업 생산품이 집결되어 상품으로 소비되는 공간이다.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화장품의 향기, 광고 문안,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애드벌룬,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광고 전단지들, 층과 층을 오
르내리는 숱한 사람들, 그리고 빗속을 달리는 자동차, 바쁜 걸음으로 거리를 달리는 여성들… 더 이상 거론
하기 조차 벅찬 이 도회의 한복판 모습을 건축가 이상은 입체와 차원 속에서 하나의 기하학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는 상업공간으로서 백화점이 갖고 있는 공간구조, 즉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입체기하학, 그 중 육면체
의 반복에 강한 예술적 감성을 느낀 것이 틀림없다. 이상의 시 세계를 파악한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난해하고
어렵기만 한 이상의 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감동을 준다. 그 감동은 때로는 지적이며, 때
로는 복잡성이며, 또 때로는 모호성이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상은 건축에 있어서 큐비즘과 연관된 공
간론을 잘 알고 있으며, 기하학의 세계가 보여준 심미적 쾌락을 유감없이 보여준 우리나라 최초의 시인이
자‘ 건축가’라는 사실이다.
* ‘AU MAGASIN DE NOUVEAUTES’ 는 불어로 ‘신기성의 백화점에서’라는 뜻으로, 백화점의 풍경을 묘사
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