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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디자인한 의자

Chairs by Architects

오늘날 실내장식과 디자인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디자인 오브제 중 하나는 의자이다. 디자인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학생과 초년 디자이너에서부터 이미 대가 취급을 받는 거장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제 각
자의 시그니쳐 스타일을 압축해 보여주고 평가를 기다릴 때 가장 우선적으로 포트폴리오에 내보이는 표준 잣
대도 바로 의자다. 웬만큼 디자인에 관심 있다고 자부하는 디자인 애호가들은 아이콘 격 의자와 디자이너 이름
까지 암기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건축가는 건물과 어울리는 인테리어, 가구, 그리고 액세서리 세부까지 총지휘하는 이른바 ‘ 종합예술’을
추구했다. 예컨대 오스트리아의 거장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 Josef Hoffmann과 오토 바그너 Otto Wagner는 건
축물과 어울리는 실내장식용 가구를 직접 디자인했다. 건축에 어울리는 실내장식용 가구를 구하기 어려웠던
과거 당시의 사정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건축적 외양과 인테리어의 완벽한 일체성을 고집했던 근대 건축
가들의 원칙주의 때문이었다. 유독 20세기 초기의 대다수 의자들이 건축가의 손에서 탄생하게 된 배경도 바로
그러한 까닭이다. 독일 바우하우스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 Marcel Breuer는 철관이라는 근대적인 재료를 활
용해서 의자 디자인의 혁신을 이루었다.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의 바르셀로나 의자는
지금도 비트라에서 꾸준히 생산판매 되고 있는 근대 의자의 고전 작이며, 스위스의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의 철제 팔걸이의자와 핀란드의 알바 아알토 Alvar Aalto의 라미네이트 굴곡목 의자도 건축가가 디자인한 의자
의 대표작들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디자인이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에 본격적으로 활용된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였다. 그
당시 건축가는 건축 설계와 가구, 실내장식까지 책임지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예컨대 르코르뷔지에, 독일
의 에곤 아이어만 Egon Eiermann, 덴마크의 아르네야콥센 Arne Jacobsen 등은 건축 프로젝트 수주 시 실내
용 가구 디자인까지 책임지겠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고집했다던 대표적인 ‘가구 건축가 furniture architect’들이
다. 이탈리아에서 가구와 인테리어 디자인은 물론 자동차와 가전제품 디자인에 기여한 주인공들도 다름아닌
건축가들이었다.

건축과 산업디자인을 별개의 분야로 결별시키려는 움직임이 제2차 대전 종전 이후 미국에서 시작된 이래, 의자
를 디자인하는 작업은 산업디자이너의 영역이 되어 버렸다. 미국의 찰스와 레이 임스Charles & Ray Eames
부부는 그들이 디자인한 의자와 가구를 가리켜서 ‘작은 건축’이라고 부르며 철제와 플라스틱을 소재로 한 제품
으로 현대 디자인의 대량생산과 소비주의 문화를 선도했다. 20세기 후반에 와서 건축가들은 의자를 디자인하
는 일에서 한 발짝 물러나 제품 디자이너들에게로 그 임무를 넘겨주었다. 바우하우스식의 기능주의에 저항한
디자이너 개인의 독특한 컨셉과 스타일, 유연하고 혁신적인 사고가 의자 디자인에 임한 디자이너들의 주된 동
기가 되었다.

특히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전세계를 강타한 스타 아키텍트의 건축 붐을 타고 의자 디자인은 건축가의 시그
니쳐 건축 스타일과 창조적 자존심을 한데 결합해 뽐낼 수 있는 품목으로 각광받고 있다. 카드보드를 겹치고
구부려 제작한 프랭크 게리 Frank Gehry의 위글 체어Wiggle Chair라든가, 기상천외한 형태로 보는 이를 어리
둥절하게 하는 다니엘 리베스킨트 Daniel Libeskind의 토르크 체어Torq는 의자 본연의 기능성 보다는 건축가
의 개성을 응축시킨 미니 건축에 더 가깝다.

글. 박진아(Art Histo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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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ublished

    July, 2012 / vol.32
  • Main theme

    Retail facilities
  • Pages

    7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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