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배려가 깃든, 치료하는 디자인
캇타 종합병원, 우메다 병원
세상에 병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병원은 인생의 시작과 끝이 공존하고 치료에 따른 고통과 두려움이 수반되
는
장소이며 차갑고 삭막한 분위기가 누구라도 움츠리게 만드는 공간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서양의 근대적 의료시
스
템을 받아들인 이래로 병원건물과 내부 인테리어가 주는 위압감도 사람들로 하여금 병원을 공포의 대상으로 각
인하
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특히 일방적인 방향지시와 많은 정보를 전달하려는 병원내 사이니지 시스템 signage
system 은 처음 병원을 방문한 환자에게 온갖 고초와 수고를 끼치기도 한다. 더욱이 지각능력과 운동능력이 상대
적으로 떨어지는 노년층에게는 진료순서에 따른 병원내 길찾기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하라켄야 Hara Kenya 가 디자인한 갓타 Katta 종합병원의 사이니지 시스템 signage system 은 이를 위한 배려
가 돋보인다. 노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가능하면 벽이나 천장에 다는 구조물 형태를 피하고 벽이나 바닥
에
직접 글자를 새겨 넣는 방식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이 병원에서는 표지 위로 사람이 걸어 다니는 셈이다.
방문자나 환자의 머리 속에 병원의 동선구조가 명확하게 그려지도록 하는 것도 사이니지의 역할이다. 갓타 Katta
종
합병원은 각각의 동선이 겹치는 중요한 교차점에 빨간 십자가 모양의 사이니지를 그려 넣어 교통정리의 기능을
겸
하게 했다. 또 화살표의 직선길이는 목적지까지의 거리에 따른 것으로 환자가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를 예상할
수 있
도록 배려했다.
우메다 Umeda 병원의 사이니지 시스템 signage system 또한 주목할 만하다. 사이니지는 일반적으로 아크릴이
나 금속, 목재, 유리 등과 같은 물질 위에 표시되지만 이 병원에서는 사이니지의 물질성을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
여‘지시’표지와는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창출했다. 하라켄야 Hara Kenya 는 이 사이니지에 백색천을 사용하기로
결
정했다. 백색 천은 손을 대지 않아도 하루하루 쌓이는 먼지에 의해 자연적으로 때가 탄다. 쉽게 더러워진다는 특
성
자체가 바로 이 작업의 핵심이다. 병원이란 그 무엇보다 위생과 청결이 최우선 되는 특수한 장소다. 그런데 만약
흰
색 천으로 만들어진, 그래서 쉽게 더러워질 수 밖에 없는 이 사인들이 언제나 청결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면 그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만큼 병원이 청결과 위생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건아닐까?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산부인과 병원도 좋지만 최상의 청결함이야말로 병원이 산모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메시
지
가 아닐까 한다. 최적의 상태로 관리된 청결함은 이제 막 태어난 아기의 위생을 지켜준다는 안도감을 산모에게
선사
하는 동시에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경험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디자이너가 병을 치료하지는 못하지만 훌
륭
한 아이디어로 병원에 오는 이들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갓타 Katta 병원과 우메다 Umeda 병원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마치 가장 정교하고 인간적인 디자인이 필요한 곳은 바로 병원이라고 말하듯이.
글.김재일(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