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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회와 건축 사이에 서다, 이상남

<풍경의 알고리듬 III>은 극과 극을 내포한 듯하다. 자연을 말하는 풍경과 인공을 대
변하는 알고리듬을 결합시켜 자신의 작품세계를 대변하는 모순적인 두 세계가 서로
뒤엉키고 혼동되는 은유적 효과를 자아낼 것임을 암시한다. 클래식하면서도 모던
하고, 화려한 문양 같기도 하면서 단순한 기호 같기도 하다. 복잡해 보이면서도 지
극히 절제된 단순미도 느껴진다. 그러나 극과 극은 겉돌거나 충돌하거나 융화하지
않고 절묘하게 공존하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재미작가 이상남은‘ 설치적 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회화를 평면으로 보지만 그의 회화는 삼차원적 볼륨감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
어 조각이나 건축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 이유는 먼저 압도적인 크기가 주
는 숭고미에 있다. LIG손해보험 사천연수원에 설치된 <풍경의 알고리듬 III>은 무려
150kg짜리 철판을 18개 이어 붙여 완성한 폭 36m 높이 2.4m에 달하는 초대형 작
품이다. 레드와 블랙 컬러의 배경화면 속에 형형색색의 기하학적 형상과 해독할 수
없는 기호가 가득한 대형 스틸패널 회화는 사천연수원을 설계하면서 오로지 이상남
의 작품만을 위해 마련한 특별한 공간이다. 이처럼 작가의‘ 설치적 회화’는 건축의
일부를 이룬다. 미술이 성당, 궁전과 같은 대형 건축물의 일부가 되는 것은 회화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건축의 한 부분이 된 이상남의 예술은 다시 그 오랜 전통 속
으로 되돌아 가며 디지털 복제 시대의 이미지 홍수를 딛고 유일성과 고착성을 유유
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각고의 수고를 통해 보여지는 배경과 형상의 대립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상남 작품에서 배경과 형상 사이의 대립은 조각에서 좌대와 형상의 관계
이거나, 건축에서 대지와 건물의 관계처럼 대비가 뚜렷하다. 이는 물감으로 하나의
형태를 두껍고 정교하게 칠해 그린 후, 사포로 표면을 매끈하게 갈아 다시 다른 컬
러를 그 위에 같은 방식으로 작업한 결과물이다. 그린다는 설명보다 조각품처럼 깎
고 다듬은 작품인 것이다. 아니, 그보다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작업해야 하는 최첨
단 기기의 미세한 부품을 세공하는 행위라 해야겠다. 그 가늘고도 정밀한 선 앞에
서면 눈이 아득해질 정도다. 어떤 신비의 공간 속을 부유하는 역동성이 탄생하게 되
는 것도 이 시점이다.

“건축가의 경우 건물이라는 결과물이 나온 후에 도면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요. 하
지만 나는 미술을 하는 사람이기에 다르죠. 서랍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도면을 꺼
내 먼지를 털어낸 뒤, 그 도면으로부터 나의 상상은 다시 시작되는 겁니다.” 작가는
건축이 합리적인 기능에 대한 것이라면 미술은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모든 것을
포용한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꿈을 꾸고 삶이 무엇인가 질문하면서 또 하나의 유토
피아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미술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그의 작품이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합리와 비합리, 아날로그와 디지털, 회화와 건축, 미
술과 디자인 사이의 샛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그 사이에서 산다는 것이다.

이상남 Sang Nam Lee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1년부터 뉴욕에 거주하며 작업
한다. 작가는 뉴욕 엘가위머 갤러리, 암스테르담 아페르 갤러리 등에서의 개인전을 통하여 세계무
대에 진출하였으며, 2008년에는 조선일보가 발표한‘ 100년 후에도 잊혀지지 않을 작가’ 10인
중 한명으로 선정되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예리하게 재단된 그의 회화는 캔버스를 넘어 거대
한 판넬로 확장되고, 나아가 이상남 고유의 건축적 회화세계를 탄생시킨다. 폴란드의 포즈난 신
공항 로비에 설치한 대형벽화, 경기도미술관과 주일 한국대사관의 대형설치회화 등 전세계 공공
건축물에서 그의 영구설치작업을 접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비평은《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
저널》,《 아트 인 아메리카》,《 아트포럼》,《 프래쉬아트》,《 아트 아시아 퍼시픽》 등에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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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ublished

    July, 2013 / vol.35
  • Main theme

    30th anniversary & Train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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