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공적인 공연장 건설의 선결과제
한찬훈 교수
공연장이란 흔히 알고 있듯이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과 같은 공연시설을 통칭하여 부르며 용도별 건축물
의 종류에서도 면적 300㎡ 이하의 공연장을 제2종 근린시설로, 그 이상의 공연장을 문화집회시설로 구분하고 있
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분류가 아직은 체계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은데, 건축법시행령에서는 공연장을 극장,
영화관, 연예장, 음악당, 서커스장, 비디오물 감상실 정도로 구분하고 있다. 법적 분류체계는 그렇다 치고 설계
자 관점에서 문제 중 하나가 공연장 용어를 혼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설계를 할 때 공연(公演)의 대표적
인 형태를 극장(劇場)으로 하는 것인데 공연이라는 것은 용어상 음악이나 무용, 연극 등을 많은 사람 앞에서 보이
는 것이다. 극장은 연극(Drama)이 이루어지는 공간(Drama Theater)으로 공연장(Theater)의 한 장르일 뿐이기
때문에 혼용되어서는 안되고 극장은 다목적 극장, 연극장, 오페라하우스, 실험극장, 뮤지컬극장으로 분류하는 것
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공연장의 분류는 목적과 형태에 따라 다양한데 먼저 공연 목적별 분류로 보자면 197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우
리가 00문화회관이라고 부르는 다목적 공연장(Multipurpose theater)이 주로 지어져 왔다. 세종문화회관이 대표
적인데 공연장의 보급을 위해 전국 각지에 건설이 뒤따랐고, 이후 공연장의 질적 개선을 위하여 공연 장르에 따
른 전문공연장 수요가 크게 늘어 우선 많이 공연되는 장르를 중심으로 연극공연장, 콘서트 홀, 오페라하우스, 뮤
지컬공연장, 서커스공연장, 국악전용 공연장이 등장하게 되었다. 형태별 분류는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액자형
(Proscenium) 공연장이 있고 소극장과 실험극에서 많이 사용하는 형태로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지 않은 실험극
장(Black Box)과 야외 공연장과 초대형 공연장에 사용되는 형태로 무대를 객석이 둘러싸는 공연장(Arena)등 여
러 형태가 있다. 최근 준공된 통영국제음악당은 위와 같은 체계에 따라 분류해 보면 클래식콘서트를 주용도로 하
는 콘서트 공연장(Classic Concert Hall)과 실험극장(Black Box)이 포함된 집합공연장(Arts center)에 해당된다
고 하겠다.
콘서트 홀은 건축을 고려할 때 다른 장르의 공연장과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건축음향조건
(Acoustic Condition)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고려되는 요소가 잔향(Reverberation)인데 이 값이 1.7~2초
정도로 설정되어 있으며 이는 다목적 공연장에 비해 약 0.6~1초정도가 긴 수치이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논의와 시뮬레이션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 수치를 맞추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의미를 이해하고 구
현하는 것인데 실제 건축 시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공연장의 잔향과 같은 수치화된 지수 외에도 수
많은 설계지수가 있고 이 지수들은 기존의 공연장을 측정하여 평균값을 낸 통계치에 불과한 것이어서 이것을 맞
춘다고 좋은 음향의 콘서트홀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공연장 음향 건축은 수학적 결과
를 도출해내는 분야가 아니라 형상과 공간구조, 마감 등의 조건을 첼로와 같은 악기처럼 다듬어내고 수많은 경험
에서 추출된 감각이 더해지고 그것을 시뮬레이션, 테스트 등으로 검증해내는 분야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콘서트홀을 포함한 공연장은 호텔, 백화점, 병원과 같이 목적된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짓는 기능형 시설이어서 건축주가 용도와 목적에 따라 제대로 된 운영계획과 비전을 갖고 짓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신의 하드웨어에 음향조건이 모두 충족되며 디자인이 제 아무리 멋져도 준공 후 운영계획이
제대로 수립되지 않으면 2~3년내 골칫덩이가 되기 쉽다. 돈만 있다고 성공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닌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최적의 공연장 건립과정은 기본 계획과 설계에 공연장 설계와 시공, 운영에 풍부한 경험을 가
진 전문가와 건축가가 추진 조직으로 참여하고, 건축주는 그 조직을 사업의 파트너로 대우하며, 사명감 높은 시
공자가 건설을 하는 한편 최소한 개관 2년전에는 운영조직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콘서트홀은 가
장 어려운 공연장 시설이어서 건축주의 높은 문화적 안목과 전폭적인 지원이 결합되어야 좋은 결실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 공연장의 사업추진 과정에서는 이를 달성하기 매우 어렵고 지금도 그 오류를 반복하
는 것이 관계자로서 매우 안타깝다.
공연장 조성만 23년을 해 온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보자면 통영국제음악당은 작년 11월에 개관했으니 국내에서
자기 위치를 찾는 데 앞으로 2~3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 본다. 성공 여부도 그 때쯤 판명날 것이다. 아무쪼록 제대
로 된 운영을 통해 국내 콘서트홀의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한찬훈 교수
호주 Sydney 대학교에서 Ph.D를 취득하고 1994년부터 충북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건축음
향설계자로 28년간 활동하고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 안산 문화예술의전당, 부산 국립국악당, 인천국제공
항, 고속철도 천안역사 및 광명역사, 숙명여대 음악당, 대구 월드컵경기장, 청주 예술의전당, 원주시 체육관, 고
양시 실내체육관, 남극 제2기지 등 다양한 120여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건축음향설계 및 컨설팅을 수행하였
다. 현재 한국음향학회 회장과 한국건축가협회 충북지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