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단장한 명동 성당을 오르며
김문태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
맑고 푸른 날, 명동에 들어선다. 절대 순수를 느끼게 하는 초여름의 눈부시게 밝은 햇빛이 빌딩숲 구석구석에 쏟
아진다. 나무에 내려앉은 연둣빛은 어느새 짙푸른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번잡한 거리에 이국 젊은이들의 가벼
운 발걸음이 이어진다. 설렘으로 붕 뜬 허공에는 호기심 어린 눈빛과 다양한 말들이 넘실댄다. 국가와 민족, 남녀
와 노소, 부귀와 빈천을 넘어선 화사한 표정에서 사해동포(四海同胞)의 얼이 배어난다.
공자의 제자인 사마우(司馬牛)가 형제 없는 것을 한탄하자, 자하(子夏)는 ‘군자가 공경하여 실수하는 일이 없고,
남과 만나는데 있어 공손하고 예의가 있으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 형제 아닌가’( 『논어』 안연 12)라고 하
지 않았던가. 마틴부버(Martin Buber)가 만남에 있어서 나와 그것의 종속적인 것이 아니라 나와 너의 대등한 것
이어야 한다고 역설한 것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모든 이들이 한 형제로 살아갈 수 있는 비법은 오래전에 제시
되었건만, 오늘 그 길을 걷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옛 지명인 종현(鐘峴)에 걸맞은 고갯마루에 서자 고딕 양식의 명동 성당이 위용을 드러낸다. 1898년 5월 29일 성
령강림대축일에 축성된 성당의 모습이 한결같다. 언제든 그곳에 가면 마주하리라는 기대감이 세파에 지친 마음
을 위로해준다. 짝사랑하는 여인을 그리는 사내의 마음이 그러할까. 한국천주교회의 심장을 상징하는 듯한 성당
의 검붉은 벽돌이 푸근한 느낌을 준다. 우뚝 솟은 종탑 끝에 선 십자가에 온 세상의 죄악과 온 인류의 구원이 한
데 매달려 있는 듯하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언덕이 오솔길처럼 정겹다. 예전에 막힘없이 뚫려있던 계단에 화단
을 꾸며놓은 탓이다. 누구든 언제든 찾아오라는 자신감 넘치던 사내다움이 지금은 소박하고 다소곳한 새색시 같
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이라는 말이 그
렇듯 서로 다름이 있을 뿐이니말이다. 잘 가꾸어진 화단 한 편에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던 이들의 우렁찬 함성이
스며있다. 단정한 계단 한 쪽에는 가난하고 힘없고 억눌린 이들의 처절하였던 절규가 배어있다. 정결한 바닥에
는 독재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불의 한 권력에 온몸으로 맞섰던 이들의 눈물과 피가 아직도 남아있다.
죄인이 피신하여도 끌어낼 수 없었던 삼한시대의 소도(蘇塗)가 재현되었던 곳! 1987년 6월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학생들을 체포하러 온 이들에게 외친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음성이 쩌렁쩌렁하다.‘당신들은 나를 밟고, 신
부들도 밟고, 수녀들도 밟고 넘어서야 학생들하고 만날 것이다.’
오솔길 오른쪽에 새로 지어진 파밀리아 채플(Familia Chapel)이 아담하다. 명동 성당 대성전의 높은 천장과 강건
한 기둥들, 제대를 둘러싼 열두 사도의 벽화와 성모자상, 그리고 키 큰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은 장엄함을 드러내
기에 부족함이 없다. 반면 파밀리아 채플은 밝은 톤의 붉은 벽돌, 낮은 천장, 기둥이 없는 장방형 공간, 담박한 스
테인드글라스로 그야말로 부드럽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흡사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마주친 숲속의 오두
막과 같은 느낌이랄까. 한쪽은 도로를 접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탁 트인 광장을 끼고 있는 성당이지만 말이다.
대성전이 숭고미를 드러내고 있다면, 파밀리아 채플은 우아미를 풍기고 있어 조화롭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
도 편안한 마음으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엄숙하고 장중한 분위기를 꺼려하는 젊은이들이 선호할만한 장소로
손색이 없다. 분위기와 규모 면에서 신자뿐만 아니라 비신자와 타종교인들이 한 데 어울려 혼배미사를 비롯한 신
심행사를 치르기에 알맞은 성전이다. 도로 쪽으로 입구가 나 있어 누구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1층의 문화공간과
도 잘 어울린다. 파밀리아 채플의 광장 맞은편에 팔 벌리고 서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도 아담하기는 매한가지
다. 붉은 벽돌의 별관을 배경으로 한 흰 대리석상이 도드라진다. 한 폭의 동양화처럼 여백의 아름다움이 배어난
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진리를 발산하며……. 광장 한가운데에 선 서울대교구청 건물은 전면에서 보면 커 보
이지만, 도로에서 측면으로보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주변 건물들과 어우러진 탓이다. 문득 구엘공원처럼
자연에 스며든 건물을 짓고자 하였던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가 떠오른다.
대성전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간다. 바위 틈 사이로 성모상이 보인다. 예전에는 가톨릭회관
앞 광장에 안치되었던 상이 한 층 위로 올라선 셈이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마주하던 성모상이었지만, 이제는 일
부러 찾아가지 않고는 대면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다른 눈으로 보면, 탁 트인 광장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꺼렸던 이들에게는 기쁜 일일지도 모르겠다. 조용한 공간에서 성모 마리아와 은밀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성모성월에 핀 빨간 넝쿨장미꽃이 찬란하다. 천주 성자를 낳은 결백한 성모 마리아에게 장미꽃을 바치
는 묵주기도(Rosarium)가 잘 어울리는 날이다.
도로에 내려서서 새 단장한 명동 성당을 뒤돌아본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건물도 바뀌는 것이 마땅하리라. 하지
만 세월이 흘러도 늘 그대로여야 할 것을 되새겨보게 된다. 내안에, 그리고 타인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을 본다면
나를 자중자애하고, 남을 예의로써 공경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이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예수님의 제자로 평등
하게 대하며 사랑할 수 있다면 사해동포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밝은 햇빛을 받으며 뜬금없이 월인천강(月印千江)을 떠올린다. 성자의 강생구속(降生救贖)
을 상징하는 명동 성당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대동(大同)과 원융(圓融)의 하나 된 세상을 꿈꾼다. 성당을 배경으
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이국인들의 모습에서 형제의 얼굴을 본다. †
김 문 태 힐라리오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한 문학박사이자 수필가이다. 우리의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고전문학과 구비문학을 연구해왔으며, 현재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
구 평신도 사도직단체협의회 기획홍보위원과 노인사목부 연구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연구서로는 《삼국유사
의 시가와 서사문맥 연구》, 《되새겨보는 우리 건국신화》와 답사채록집 《강화구비문학 대관》 등을 펴냈다.
문학작품으로는 중국선교답사기행문 《둥베이는 말한다》와 청소년소설 《세 신학생이야기》를 썼으며, 어린이
들의 가슴에 좋은 씨앗을 심어주고자《자연과 꿈을 빚은 건축가 가우디》, 《세상을 바꾼 위대한 책벌레들》 등
의 동화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