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명동성당 건축의 힘-낭만성(浪漫性)
이상진 숭실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순교
1866년 전국적인 4대 박해 가운데 마지막으로 자행된 천주교 병인박해시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했으며 이 중
특별한 젊은 선교사 3인이 포함되어 있다. 병인년 3월 7일 한강변 새남터에서 베르뇌 장 주교와 함께 칼을 받아
순교한 이들은 브르트니에르 유스토 백신부(1838-1866), 도리 베드로 김신부(1839-1866), 볼리외 루도비코 서신
부(1840-1866)이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종교적 신념 하나로, 지구 반대편 오지 중의 오지였던 대륙 끝 조선, 그
먼나라까지 와서 청춘을 불사를 수 있었던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고딕건축
건축사적으로 나타난 다양한 시대적 현상을 합리주의와 낭만주의로 나누어 논한다면 고딕건축의 예술적 경
지를 낭만주의적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고딕건축의 낭만주의는 무엇인가? 프랑스 고딕건축은 북부 프랑스
지역에서 12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딕이라는 단어는 르네상스 시절 이탈리아에서 북방 야만
인 고트(Goth)족의 건축이라고 약간은 경시하는듯한 호칭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시기 유럽대륙의 가장 큰 사
건은 십자군전쟁(1096년~1272년)이고 이 사건이 고딕건축의 경제적,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는 추론에는 약간의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으나 대체로 긍정적이다. 오랜 기간에 걸친 종교전쟁을 통해 로마를 중심으로 한 카토릭
교회의 국가적 사회적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딕 교회의 수직적 거대함과 인간의 재능을 뛰어
넘은 장식적 기교는 신에 대한 찬양과 교회의 권위를 함의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며 이를 건축의 낭만주의
적 표현이라고 한다. 합리주의가 현실적이고 이성(理性)적 판단에 근거한다면 낭만주의는 정서적이고 이상(理
想)적 신념에서 출발한다.
프랑스인 건축가 코스트 신부의 19세기 신고전주의
신고전주의 건축은 18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그리스 로마의 고전주의가 지니는 원형의 재
생, 고고학적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건축적 사고가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으며 19세기 신고전주의 건축은
새로운 건축유형에 대한 탐구의 과정에서 과거 건축양식의 리바이벌(Revival) 형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프랑스
태생의 명동성당 건축가 유진 코스트(Eugene Coste) 신부가 어떠한 건축교육을 받았는지 알려진 자료는 없다.
그러나 그가 자란 프랑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많은 고딕양식의 건축물들과 고고학적 탐구라는 19세기 신고전
주의 정신은 코스트 신부를 고딕건축의 장인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종현 명동성당
종모양의 언덕 위 명동성당은 프랑스 마을에서 볼 수 있는 랜드마크적 교회의 모습으로 이방인 건축가의 머리에
투시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교회는 본인이 체험하고 연구한 고딕양식의 건축물이며 중세시기의 고딕건축과
같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담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명동성당에는 첨두아치 외에 고딕건축의 3가지 구조적
특징이 모두 실현되어 있지 않다. 명동성당의 리브볼트(Rib-Vault)5)와 부축벽(Flying Buttress)6)은 구조응력의
해법이라기보다는 고딕양식이라는 장식적 의미가 더 크다. 그 당시의 조선을 생각하면 완전한 고딕건축의 완성
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벽돌공이 없어 중국에서 기술자를 데려다 한강통 연와소에서 제작하여 쌓아야 했고
모든 건축기술을 하나하나 가르쳐 작업해야 하는 상황이니 이 모두를 디자인하고 실행해야하는 건축가에게 어떠
한 시련과 스트레스가 닥쳤을지 짐작이 간다.
건축가 코스트 신부는 결국 명동성당(1892년~1898년)이 완공되기 2년 전 1896년에 별세한다. 그가 명동성당에
담아내고 싶었던 낭만주의적 표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고딕건축이 그랬고 19세기 신고전주의 탐구에서 확인하
였듯이 그것은 신에 대한 찬양이며 파리외방선교회7)에서 파견되어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열정과
자존감이었다. 그리고 조선의 천주교 박해라는 종교전쟁에서 이겨낸 승리의 기쁨을 신에게 바치고 싶었을 것이
며 그 또한 그의 동료들과 같이 오지의 땅 조선에서 순교하게 된다.
낭만에 대하여...
필자는 대학에서 ‘건축학개론’이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하여 매학기 가르치고 있으며 첫 수업의 주제는 건축의 낭
만성이다. 최백호의 노래가사와 같이 지난 것에 대한 회상이나 감상적 넋두리가 아니고 건축에 존재하는 비현실
적이고 이상적인 정서(情緖)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다. 건축이 지니는 낭만성은 결국 건축의 힘이 된다. 이것은
예술이되고 스토리가 되며 그 장소의 문화적 가치를 일궈낸다. 명동성당의 수직적 조형과 솟구치는 공간, 아름다
운 스테인드글라스, 반복된 첨두아치 등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진실로 명동성당에 내재된 건축의 힘
은 건축가의 신념에서 표현되는 낭만성인 것이다. 다시 말해 건축가 코스트 신부가 남기고 싶었던 종교적 신념,
파리외방선교회에서 파견되어 순교한 동료 신부들의 열정과 사랑, 그리고 이 땅에 심어진 평화의 기쁨인 것이
다. 실제로 이 신념은 명동대성당을 한국천주교의 메카로 만들었으며 민주주의의 버팀목이 되게 하였고 대한민
국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로 길이길이 기억되게 하였다.
필자는 몇 해 전 원정수교수님의 부탁으로 명동성당 보수공사(2002년~2010년)에 대한 보고서를 제작하게 되었
다. 이 과정에서 명동성당의 건축을 책임지었던 유진 코스트 신부를 알게 되었고 그의 안타까운 죽음도 알게 되
었다. 건축가 코스트 신부에 대한 자료는 없으나 그의 열정과 장인정신은 파리 주교와 왕래한 편지들에서 엿볼
수 있었다. 건축가의 신념은 건축의 힘이 된다. 이를 학생들과 후배 건축가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명동성
당을 체험하는 많은 관람객들에게 건축가의 신념을 느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상 진 아타나시오
필자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미시건대학 도시 및 건축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20여년간 미국 및 한국의 여러 설
계회사에서 근무한 미국 및 한국의 건축사이다. 2000년 이후부터는 숭실대학교 건축학부에 교수로 임용되어 현
재에 이르고 있다. 1990년 말 귀국 후 간삼건축에 근무하며 삼성동 포스코센터 프로젝트에 참여, 설계총괄 PM을
담당하였으며 명동성당 보수공사 건설기록지도 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