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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Essay] '843일의 기억’_정여나
등록일 2016-09-22 17:03:23 조회수 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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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일의 기억’]

정여나  ㅣ  G.SCAPE

 

 

#1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진다'
어느덧 입사 3년차가 되었다. 아직 마음은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 그때 그대로인데, 어느덧 설계에 참여한 프로젝트가 꽤나 쌓였다. 때로는 풀리지 않는 해결에 대한 고민을, 때로는 실마리를 찾았을 때 순간의 기쁨을 맛보며, 프로젝트라는 ‘기회’를 통해 스스로의 부족함을 하나씩 채워나가는 값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근, 답사부터 설계, 착공, 준공까지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던 나의 실질적인 첫 작품, ‘blossom valley’가 신촌 연세대학교 내에 자리를 잡았다. ‘이 계획이 정말 실현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으며 진행했던 지난 1년이 결실을 맺어,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대화하고, 휴식하고,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뿌듯하면서도 참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비록 그 크기는 작지만 내 생각이 담긴 공간 안에서 추억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설레는 일 인지를 깨달아가는 이 시간, 이 느낌을 5년, 10년이 지난 후에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2년 반 동안 성장한 내 모습을 돌아보며 앞으로를 다짐하는 계기가 되도록 기록으로 남겨두려 한다.

 

#2 ‘나만의 색을 찾아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다섯 살 즈음 집 앞에 있던 예화 미술 유치원을 시작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각종 미술대회에 참가하며 ‘꼬마화가’ 라고 불렸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는 줄리앙과 비너스, 아그리파를 친구 삼아 미술학원에서 인생의 반을 보냈다. 그래서 내 꿈은 아마 유치원 때부터 늘 화가였고, 그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몇 번의 일탈(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미술학원을 빼먹었던) 이 있었지만 별 탈 없이 미대에 진학했고, 미술계의 대세를 따라 디자인학부, 그 중에서도 대지를 도화지 삼아 내 생각을 담을 수 있는 건축디자인 과를 선택한 그 순간, 바로 그 때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미술대학 내의 건축디자인’ 이라는 타이틀이 때로는 유리하게, 때로는 불리하게 작용했는데, 이 때문에 사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많았다. 특수한 요건을 가진 나에게 가장 맞는 일이 무엇인지 경험을 통해 직접 부딪혀보자! 라는 생각으로 다양한 회사에서 인턴을 경험하며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스스로를 파악해 나가려 노력했지만 늘 100%의 정답을 얻을 순 없었다.
내가 가진 강점을 살리고, 내가 가진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된 ‘건축적 조경을 지향하는 G.scape’ 라는 문구에 이끌려 어느새 지원서를 제출하고 있었고, 여러 가지 시험과 몇 번의 면접을 거쳐 최종 입사의 타이틀을 얻었다.


입사과정도 나는 참 특이하고 특별했다. 포트폴리오에 합격하고 나서 이루어진 캐주얼 면접에서 지금의 소장님과 팀장님을 처음 뵐 수 있었다. 소장님은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인상이 참 좋았고, 김훈연 팀장님은 좀 냉정해 보였다. 지금 와서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평론가 김태훈’과 닮아서 그렇게 느꼈나 싶기도 하다. 그 이후 진행된 실기시험 또한 색달랐는데, 도면을 그려야 할 것 같아 준비해갔던 스케일 바, 드로잉 도구들 등이 무색하게도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여 표현해보라’ 라는 추상적 주제를 받았다. 당황했지만 금새 걱정이 다행으로 바뀌어 셔츠를 걷어붙이고 펜을 휘날리며 4절지 스케치북 안에 나를 담았다. 이어진 프레젠테이션도 완벽하진 않지만 열정 하나만으로 최선을 다해 해냈던 것 같다. 그 후 여러 번의 면접이 있었는데, 나와 또 다른 지원자 한 명 사이에서 굉장히 고민이 많으셨고, 그때 내가 했던 말이 참 당돌했다고 하신다.

 

“그냥 두 명 다 뽑으시면 안 되요^^?


 

△2014. 04 떨리던 실기시험 모습

 

그렇게 거침없이 당돌한, 비록 조경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내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셨는지 5월의 어느 늦은 저녁, 최종 합격 이메일을 받았다. 초저녁부터 잠에 취해 계시던 엄마를 깨워 부둥켜 안으며 기쁨을 제일 먼저 나누었다. 그 후 회사에 계시던 아버지를 집으로 강제소환하고, 외국에 나가있는 언니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합격의 축배를 들며 내 인생 제 2막을 시작했다. 그렇게 취업! 이라는 기쁨도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순수 조경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잘 적응해서 성장할 수 있을까? 과연 내 길이 맞을까? 라는 걱정과 고민이 마음 속 한 곳에 싹트고 있었다. 그렇지만 난 무엇이든, 어디에 가서든 잘해낼 자신은 있다! 라는 확신은 늘 가지고 있었고, 그 패기 하나만으로 2014년 5월 19일 바람이 선선히 불던 날, 떨리는 첫 출근을 했다.

 

2014. 05. 19 첫 출근 기념으로 사진 찍어요~~찰칵!


 

#3 '경험은 지식보다 강렬하다'_ 입사 후 2년 반 동안의 시간

간삼건축 G.scape에 입사해서 처음 맡게 된 프로젝트는 ‘로봇랜드’ 라는 테마파크 프로젝트 였는데, 이때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드로잉’ 이라는 강점이자 무기를 처음 꺼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처음 맡게 된 프로젝트가 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일 이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즐겁게 일할 수 있었고, ‘다행히 나도 쓸모가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며 쉽게 ‘조경' 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2014. 05 로봇랜드 프로젝트 공간 드로잉

 

조금씩 흥미를 느낄 즈음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는데, 바로 작년에 준공 된 연세대학교 백양로 프로젝트였다. 그 중에서도 나는 백양로의 중심에서 파란 빛을 뿜어내는 ‘Blue Cloud’ 를 중심으로 도맡아 진행했다. 이전의 로봇랜드 프로젝트에서 해왔던 평면적인 스케치에서 벗어나, ‘3d Sketch’ 라는 입체적인 모형작업으로 끊임없는 검증을 통해 디자인을 완성 시키면서, 연세대의 상징인 독수리의 날개를 품은 분수 디자인을 완성시켰다. 컨셉, 디자인, 모형검증은 물론, 납품도면까지 직접 작업하며 처음 제대로 된 ‘도면’을 작성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설계 진행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실제적인 프로젝트였다.

 

3d sketch_ 검증, 검증 또 검증! 손이 많이 아팠다.

 

사실 돌을 하나하나 깎으면서도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이게 정말 현실이 될까?’ 늘 의심을 품었었다. 연세대에 다니는 친구가 ‘Blue Cloud’ 분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글에  ‘그거 우리 팀이 만듦’ 이라고 댓글을 달 수 있는 현실이 된 것이 아직도 놀랍고 신기하다.
  

연세대 백양로 ‘Blue Cloud’ 현장에서 안전모를 처음 착용하고…/ 은희 부팀장님과 기념촬영!

 

이후, ‘마포 석유 비축기지’ 라는 국제현상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때 ‘현상 프로젝트’라는 것을 처음 접했다. 건축 부서와 협업으로 진행했는데, 끊임없는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건 참 어려운 일’ 이라는 것을 몸소 느꼈고, 패널 작업과 CG작업 등 이전 프로젝트와는 또 다른 업무 프로세스를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현상을 통해 얻은 깨달음 중 가장 으뜸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답사로 인해 치마와 구두는 나에게 사치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차라리 항상 츄리닝과 운동화는 회사에 놓아두자고 다짐했고, 그 뒤로도 여전히 불현듯 찾아오는 시간들에 굉장히 많이, 또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답사 전 날 미리 말씀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하하)
       

2014. 07. 더운 여름날, 치마입고 구두신고 현장답사…

 

하나드림타운 프로젝트는 예술을 컨셉으로 하여 진행한 프로젝트여서 감회가 남달랐다. 사실 미대생들이 예술의 역사나 화풍, 화가들의 연대기 등 예술적 지식을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바로 우리 소장님이 그랬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술을 전공한 여나가 한번 해보자’ 라는 소장님의 단순한 발상으로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다. 그 덕분에 나도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 라던가, 클림트의 금빛이 상징하는 의미 등을 다시 머릿속에 새기며 잠시 멀어져 있던 예술적 삶에 다시금 심취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전에는 작품을 보며 색감이나 구도, 작품에 담긴 감성에 대해 생각했다면, 지금은 무형의 예술적 가치를 공간에 어떤 형태로, 어떤 재료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좀 더 고차원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 추상적인 것을 공간에 녹여 표현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어려우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던 프로젝트였다.


 

 2014. 11. 예술과 접목시킨 하나드립타운 컨셉 모형

 

글을 쓰다 보니 답사에 대한 기억이 굉장히 많은데, 우리 팀은 그만큼 현장에 답이 있다고 믿고, 최대한 많은 답사를 통해 해답을 얻으려 노력하는 듯 하다. 신한은행 진천연수원 프로젝트 또한 그랬다. 이 답사는 소장님을 포함해 모든 팀원이 함께 간 대장정이었다. 배낭 안에 김밥, 견과류, 초콜렛, 빵, 에너지음료 등등.. 산 속에 갇히게 되면 살아남기 위한 소중한 양식들을 가득 채워 사이트가 있는 진천으로 길을 떠났다. 2인 1조로 짝을 이루어 마치 탐험가가 된 듯, 나침반과 해의 방향을 쫓아 가시 돋친 울창한 나무 사이를 헤치고, 날다람쥐처럼 산 벽을 네발로 기어 오르며 신한은행 연수생들을 위한 야외 연수 코스를 계획하여 제안한 결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의 편에 서서 ‘무엇이 필요할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끊임없이 생각하고 진심을 다해 제안한다면, 그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느꼈던,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따스했던 경험이었다. 뿐만 아니라 경사가 가파른 돌 산에서 먼저 손을 내밀던 그 온기를 통해 임팀장님의 소중함을 느꼈고, 그 굉장한 모험 덕분에 우리 팀은 조금 더 서로를 의지하는 끈끈한 팀워크를 다질 수 있었다.
  

 

 2015. 11. 그날의 추억. / 흙 바닥 이라도 상관없다. 먹을 것을 다오. / 밤9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 휴게소에서 작전타임


마지막으로, 앞서 말했던 나의 가장 최근작인 연세대 간호대학 사이공간인 ‘blossom valley’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감회가 남다르다. ‘할 수 있을까?’ 로 시작했던 걱정이 ‘할 수 있다!’ 로 바뀐,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프로젝트이다.
작업 초반, 팀장님이 항상 물어보시는 것이 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작업하고 있냐?’
늘 이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하게 할 것인지, 어떤 행태를 유도할 것인지, 결과적으로 어떤 감동을 줄 것 인지에 대한 ‘목표 설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신다. 이 ‘blossom valley’는 그 목표에 대한 확실한 설정 덕분에 인프라의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아래 모든 것을 집중시켜 진행하였다. 이 계획의 방향은 비용과 공사기간을 최소로 한 저개발 계획으로 건축주를 만족시켜 다음 프로젝트를 추가로 수주하는 값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래서 시작보다는 마침표를 찍는 일이 중요하고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안다. 시작부터 끝까지 참여한 이번 프로젝트 경험을 통해, 목표가 확실해야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디자인이 나올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계획부터 준공까지의 과정, 현장 대응, 식재와 포장, 마감의 중요성 등을 직접 눈으로 보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무엇보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지식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배움으로써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은 느낌이다.


 

모형작업을 통해 공간을 상상한다.

 

 

 

2016. 07. 준공된 ‘blossom valley’

 

 

#4 ‘같이의 가치’_ 같이 목표함의 가치를 알고, 가치를 같이 공유하는 것
 ‘같이의 가치’ 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누군가 그랬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고.
그런 의미로 보았을 때, G.scape 이라는 내가 속한 부서는 이 ‘같이의 가치’를 꽤 잘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개개인이 가진 어떤 탁월한 능력보다는 그 능력이 함께 모였을 때 강력한 시너지,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믿고 모든 프로젝트를 그렇게 진행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7명이 모인 개개인이 프로젝트로 하나가 된다는 것, 개인이 아닌 우리 라는 울타리에 있는 것이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답답했던 적도 많다. 사실 지금도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또 앞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긴… 조금 거짓말 같다. (나도 때로는 고독을 즐기고 싶다…) 하지만 우리 팀에도 준공물 들이 하나씩 결실을 맺고, 좋은 끝맺음을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들어오는 것을 보니, 이 믿음과 신뢰를 위해 하루에 에너지 음료를 세 캔씩 마시며 불철주야 최선을 다했구나 천천히 깨닫는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이 기록을 통해 첫 입사부터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졌다. 조경지식이 전무하던 내가, 어느새 사람의 행태를 담은 가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앉아 초코 과자를 꺼내먹으며 웃음 지을 수 있을 만큼 성장 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가 ‘함께’ 했기 때문인 듯 하다.

‘열정! 긍정! 온정!’
면접 때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던 문구이다. 다시 이 마음, 이 때로 돌아가 모든 것을 열정으로, 긍정으로, 온 맘 다하는 온정으로 앞으로의 내 설계 인생을, 쑥쑥 성장하는 나를, 더불어 유난히도 덥던 2016년의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 또 다시 봄이 오는 계절의 반복을 거쳐 좀 더 푸르러 질, 내 손길이 닿은 공간들을 기대로 맞이해본다. 앞으로의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과 추억을 가지고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를 만드는, 공간에 가치를 녹이는 사람이 되길!
 

 △2016.04.08 디자인1부문 핀업발표中 (좌. G.SCAPE 김훈연 팀장/ 우. 정여나 팀원)

 

 

 

안녕하세요. 간삼건축 G.scape 입니다!

 

 

 


 

      정 여 나 팀원  

      G.SCAPE  [email protected]

      미대 입시를 준비하여 숙명여자대학교 디자인학부에 입학, 건축디자인을 전공하여 조경분야

      발을 들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싶은 3년차 사원. 한국의 Kathryn Gustafson (미국출신

      여성조경가) 를 꿈꾸며 ‘깨어있는 빌더’ 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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