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Essay] 화담숲(和談숲)을 들어서며_이혜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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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6-12-12 10:41:29 | 조회수 | 7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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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숲(和談숲)을 들어서며...
이혜경 (곤지암 리조트 화담숲 건축가)
꽃이 진 자리마다 / 열매가 익어가네
시간이 흐를수록 / 우리도 익어가네
익어가는 날들은 / 행복하여라
말이 필요없는 / 고요한 기도
가을엔 / 너도 나도 / 익어서 / 사랑이 되네
이해인 ‘익어가는 가을’
수목원이 달라지고 있다. 도심에 가까운 수목원일수록 도시인들에게 자연 속 휴식과 함께 각종 교육과 예술적 경험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고민이 한창이다. 울창한 수목들로 둘러싸인 넓은 부지 속에서 건축과의 공존을 통해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LG상록재단이 설립한 화담숲은 경기도 소재 곤지암리조트 안에 조성된 수목원이다. 관람객이 산책을 하면서 식물을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원래 지형을 토대로 다양한 테마의 정원과 산책로를 배치한 수목원으로 국내 자생식물 및 도입식물 약 4,300종을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다. 화담숲도 40만 평의 숲 속에 수년간에 걸쳐 조성된 조경 공간을 지난 해 어느 정도 마무리하면서 수목원의 다양한 역할을 고민한 끝에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자작나무, 산이끼, 소나무는 물론 희귀한 분재들로 조성된 숲 공간 외에도 지붕과 벽으로 조성된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수목원의 새로운 역할에 주목한 탓이다. 때로는 쉼터로, 때로는 예술과 교육, 창조적 영감을 위한 공간으로 제 역할을 해 줄 장소를 필요로 했다. 외형은 주변 자연과 조화로우면 그만이었다. 두드러지지 않으며 아름다운 자연을 보완해줄 정도면 충분했다.
다양한 공간이 공존하는 화담숲 진출입로 부분
민물고기 생태관과 곤충관
화담숲의 설립자는 사라져가는 국내 서식 희귀 동식물을 보호하고 알리는 것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방문자 센터 역할을 하던 기존 건축물 내부를 리모델링하여 ‘교육’이라는 새로운 기능으로 채워 넣는 작업을 하였다. 이곳에는 평소 눈여겨보지 않아 무심히 지나쳤던 토종 민물고기와 곤충의 생태를 쉽게 설명하고 직접 접할 수 있는 공간을 계획하였다.
먼저 설계팀은 전시업체, 화가, 민물고기 관장, 수초전문가, 수조설비업체 등의 전문가를 직접 찾아 인터뷰하여 프로젝트 팀으로 묶은 다음 설계 초기부터 함께 프로그램을 구성해 나갔다.
민물고기는 해양 어류 수족관에 비해 크기가 작고 색상도 비슷하게 보여 관심을 끌기 쉽지 않겠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민물고기에 대해 조사를 진행할수록 종류도 다양하고 예쁜 생김새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민물고기의 전시 방법을 스토리텔링(Storytelling) 기법으로 정해 관람객들의 흥미를 돋우고, 상류 계곡의 지류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하나의 흐름에 여러 계곡을 수조화하고 생태가 비슷한 어류들끼리 군집함으로써 전시의 주목도를 높였다. 작은 민물고기의 생태를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미술관의 작품처럼 전시하는 갤러리 수조도 제안하였다. 또한 수초전시 전문가와 함께 생태환경을 테마로 한 수조를 꾸며 민물고기의 특징별로 수조에 넣음으로써 마치 풍경화를 감상하는 효과를 갖도록 하였다.
민물고기 생태관과 상부 곤충관
민물고기 생태관 내부: 국내 대다수 수족관이 외래 어종으로 가득 차 볼거리 제공에 치중하는 데 비하면 토종 민물고기에 대해 깊이 있게 접근한 생태관은 소박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산천의 토종 생태계가 가진 은근한 매력을 제대로 드러낸 것이라 생각한다.
한옥 카페테리아
화담숲은 가장 짧은 코스라 해도 다채로운 풍경을 따라 걷다 보면 한 시간을 훌쩍 넘기기가 예사다. 이 때문에 코스의 마지막 내리막 길을 내려오면 다다르게 되는 곳에 다리 쉼도 하면서 화담숲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를 계획하였다. 원앙이 살고 있는 연못을 배경으로 하는 곳이다.
원앙연못 맞은편에서 바라 본 한옥 카페테리아: 잘 가꿔진 연못가에 자리 잡은 수변데크와 한옥은 새로운 미감을 자아낸다.
화담숲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어떤 맛일까? 목을 축이고 허기진 배를 채우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눌 카페테리아의 기능적인 요소 외에도 정서적 충만감을 담아 낼 건축물이 필요했다. 설립자는 전통기와를 얹은 한옥을 제안해 주었다. 한옥의 미를 살리면서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공간을 마련한다면 제격이었다. 결국 우리는 나지막한 옛 한옥의 정취와 심플한 현대적 감수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한옥카페테리아를 청정 자연으로 둘러싸인 수목원 한 가운데 살포시 올려 놓기로 했다.
한옥은 구조 형식이나 마감재가 현대 건축물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한옥이 가진 전통적인 요소들을 차용하되 그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현행 법규와 기능에 부족함이 없는 방식으로 풀어내야 했다. 한옥의 정취와 공간감도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이미 걸어 놓은 대들보를 현장에서 다시 내려 동그스름하게 깎아 내는 작업을 추가로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프로젝트를 완성시켜 나갔다.
MOA 뮤지엄
숲 속 미술관은 국내에서도 이제 낯설지 않다. 다양한 장소에서 개성 있는 미술관을 만나는 일에 익숙하다. 화담숲 입구에 위치한 기존 건축물(제설장비고 및 매표소) 3층에 미술관을 계획함으로써 숲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공간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제설장비고 건물은 화담숲 초입에 위치해 접근성과 인지성 확보에 유리하였다. 원래 건축물 설계 당시 어떠한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구조 설계를 한 덕분에 구조 보강 없이 증축이 가능했다.
미술관 입구로 가는 길
처음에는 개인 소장 예술품을 상설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계획했지만 실제 운영팀이 꾸려지면서 보다 가치 있고 다채로운 예술품들을 기획하여 전시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갔다. 내부는 일본에서 상업 공간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가와사키 소장의 디자인 컨셉으로 공간을 구성하였다. 차단이 필요한 일부 전시실을 제외하고는 내부 공간에서도 외부의 자연을 그대로 투영하는 장치를 마련하여 숲 속의 느낌을 내부 공간으로 최대한 유입시키도록 하였다.
천창에서의 빛이 유입
전시실에서 보이는 조각공원 교육실에 전한 후정공간
외벽 재료는 재료적 친근감을 가질 수 있도록 화담숲에서 바닥에 많이 사용하는 석재와 유사한 사비석을 사용하였다. 형태는 최대한 단순하게 처리하되 진입로에서 올라올 때 정면에서 이정표처럼 맞이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화담숲 광장에서 바라 본 뮤지엄 정면과 뮤지엄 후면
제2주차타워
입소문 탓에 화담숲으로 관람객이 몰려들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다.(2016년 방문객 80만명) 여기에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성해지면서 관람객들의 체류 시간이 점점 늘어나 운영자나 관람객이나 주차는 가장 골치 아픈 문제였다. 관람객들이 몰려 오면서 서둘러 시작된 주차타워 건립 계획은 규모가 진행 중에도 계속 늘어나 1,000대의 주차를 확보할 수 있는 4층 규모의 주차타워로 커지게 되었다.
더 많은 차를 세우기 위해서지만 계획 중에 점점 커진 덩치 때문에 이 철골 주차장을 어떻게 해야 위화감 없이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 튀지도 말 것이며 뒤처지지도 않아야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뒷 배경인 언덕과 가로수로 심긴 소나무와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결과물이 나온 듯하다.
주차장 내부는 운전자가 가장 빠르게 층별 이동을 할 수 있게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배치 방식으로 램프를 배치하였다. 주차면에는 기둥을 없앤 장스팬 방식을 채택하였고, 주차구획을 100% 확장형으로 설치하여 실제 운전자들로부터 주차하기 편리하다는 호응을 얻고 있다.
주차하기 편리한 기둥이 없는 확장형 주차구획: 주차타워까지 완성되어 화담숲에 필요한 건축물은 어느 정도 갖춰진 느낌이다.
더 깊어질 화담숲을 기대하며
항상 그렇듯이 촉박한 시간과 조건들 속에서 발주처나 설계사 할 것 없이 여러 파트가 함께 고민하고 협업하여 의미 있는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울창한 수목에 내려앉은 고운 빛의 단풍이 아름답게 포장해주어 적잖은 감동을 주는 공간으로 탄생한 듯하다.
우리가 하는 작업이 새로 조성된 대지에 새 건축물을 세우게 되어 항상 새것으로 자태를 뽐내게 되지만 사실 새것의 감흥이란 자연스레 나이 듦에 따라 얻게 되는 깊이 있는 아름다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지금은 새로 닦은 길가에 심긴 어린 나무들도 시간의 흐름 속에 뿌리가 깊어지고, 가지와 잎들이 더 울창해질 것이다. 그때면 건축물도 세월의 흔적을 제 몸에 새길 것이고 자연과 건축의 공존을 더 완숙한 모습으로 보여주리라 믿는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룰 때만이 참 생명이 살아갈 수 있다’는 화담숲의 설립 취지처럼 말이다.
Completion 2016 | Location Gyeonggi-do | Site Area 4,145.27㎡ | Building Area 623.98㎡ | Gross Floor Area 725.04㎡ | Type Cultural | 참여건축가 한기영, 이혜경, 남명관, 오은교, 한승훈, 조수미, 곽승, 박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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