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아쿠아리움 디자이너로서의 첫 걸음
한화호텔&리조트 문화사업개발팀 조명숙 디자이너
국민대학교에서 실내디자인 전공 후, 전시디자이너로 경력을 쌓고 현재 한화호텔&리조트 문화사업개발팀에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완공된 아쿠아플라넷 제주와 여수EXPO 아쿠아플라넷 여수, 현재 시공 중인 아쿠
아플라넷 일산을 기획·디자인하였다. 수족관뿐 아니라 판교 디지털아쿠아리움 IQUARIUM, 판교 잡월드 운영
권 등 문화사업과 관련된 사업개발 공모 및 기획·설계까지 담당하고 있다.
자연경관이 뛰어난 제주에서도 손꼽히는 섭지코지와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지어진 아쿠아플라넷 제주는 그
주변환경만큼이나 아름다운 생물로 가득한 또 하나의 제주의 명물이다. 메인수조인 ‘제주의 바다’ 앞에 서 있으
면 그 황홀함과 함께 4년 전 처음으로 맡았던 아쿠아플라넷 제주 프로젝트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 원래 내 직
업은 박물관을 디자인하는 전시디자이너였다. 박물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듯이 오랜 색이 바랜 유물과 저서
등 살아있는 것이 아닌 만들어진 지 오래된 물건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그것도 국내 기술로
최초이자 최대 규모 아쿠아리움 전시 디자인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그때만 해도 아쿠아리움의 생물은
그냥 다 비슷하게 생긴 생선이었으며 아쿠아리움이라는 전시에 뭐가 필요한지, 어떤 생물을 넣어야 하는지 그
리고 얼마나 이 아이들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경험도 시간도 없었던 신입 디자이
너였다.
오로지 관람자를 위한 전시 디자인에 익숙한 나에게 제일 처음 부딪힌 난관은 생물공부였다. 앞에서 말한 바
와 같이 약 500종, 4만 8천 마리에 관한 어종 및 서식지에 관한 이해와 학습이 필요했다. 혹 어떤 사람들이 “아
쿠아리움 전시 디자이너는 뭘 하나요?” 라고 물어보면 가장 쉬운 답변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집이 필요하지
요. 집에 잠잘 수 있는 침대도 넣어주고 밥 먹을 수 있는 부엌 가구도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넣어주지요. 그것
처럼 저는 사람 대신 우리 펭귄, 바다코끼리, 가오리들 쉴 수 있는 집을 만들어 줍니다.” 라고 답을 한다.
그런 집을 설계하기 위하여 계속 생물공부를 했다. 야행성이라 어둠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조도를 낮춰주
고 추운 환경에서 사는 아이들은 차가운 온도를 만들어주며 피할 곳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서 산호와 해초를
심어준다. 또 이들과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사육하는 사육사들의 안전과 편리성을 위하여 필요한 공간을
설계했다.
예를 들어 아쿠아플라넷 제주의 가장 인기 친구이며 우리나라 최초로 사육되고 있는 바다코끼리 ‘바랴’는 아직
어린 꼬마 숙녀이지만 몸무게는 무려 800kg이며 성체가 됐을 경우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성격이 순하고 사람
을 좋아해서 사육사를 무척 잘 따른다. 그래서 간혹 사육사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있는 힘껏 안아버리면 사
육사는 그 무게에 크게 다칠 우려가 있어서 바랴의 연약한 피부를 위한 매끄러운 디스플레이, 추운 지방에 사
는 서식환경을 고려한 차가운 해수 외에도 사육사를 위한 대피장소, 그리고 바랴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벽체와 문을 설계했다. 물론 정말 튼튼히 설계했다고 자부했지만 바랴의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문이 날아가
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생물을 위한 설계에서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으며 설계 의도와 100% 일치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오로지 전시 디자이너가 생물과 사육사만을 위하여 디자인하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관람자를 잊을 수는 없다. 단지 아쿠아리움 설계에서는 미적 기능성보다는 생물과의 교감을 중요시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행동전시(생물의 움직임을 특화시켜 보여주는 행위)를 통하여 생물과 관람자가 교감하고 좀 더 가
까워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위와 같이 아쿠아리움 전시 설계는 생물, 사육사, 관람자 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설계를 해야 한다. 솔직히 이
셋 모두를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디자인을 하면 좋겠지만, 그것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서로
가 교감하고 자신의 자리를 조금씩 양보하며 함께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서로 간
의 교감을 좀 더 편하게 쉽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쿠아리움 설계자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